사람은 보통 계획이 다 있다. 열세 살 무렵 을 시청하다 골든벨을 울린 언니가 5개 국어로 유창하게 인사하는 것을 본 뒤 무조건 5개 국어를 배우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결심은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내 인생의 장기계획 중 하나로 남아있다. 앞으로 4개국의 언어를 더 배우기만 하면 된다. 또 20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불어나는 체중의 관리를 위해 “매일 10㎞씩 걸어 건강을 회복하겠다!”는 한번도 실행한 적 없는 중장기적 계획이 있고, 부디 이 칼럼이 명문이 되어 널리 읽혔으면 하는 망상형 계획, 가깝지 않았던 학교 동기의 결혼식에 불참하기 위해 알리바이를 만드는 부도덕한 계획, 별다른 계획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살아지는 부를 갖고 싶다는 ‘무계획이 상팔자’형 계획도 있다. 계획의 크기와 종류는 이렇게나 다양..
이번에도 ‘젊은국회’ ‘청년정치’는 헛된 꿈일런가. 여야 정당이 한목소리로 세대교체 공천과 ‘젊은피’ 수혈을 내세웠지만, 막상 지역구 공천 접수 결과는 너무 빈약하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4월 총선 지역구 공천 신청자 1122명 가운데 2030세대 후보자는 3.6%(41명)에 그쳤다. 민주당 신청자 475명 중 20대는 한 명도 없고 30대는 9명(1.9%)에 불과하다. 한국당은 647명 중 20대는 2명, 30대는 30명으로 집계됐다. 청년 충원에 실패하면서 전체 공천 신청자 중 50대 이상이 90%에 육박한다. 현역의원이 교체되는 지역을 청와대 참모나 법조·관료 출신 새로운 ‘586’이 주로 차지해 ‘수직적’ 물갈이는 까마득해진 상황이다. 정치신인 청년에게 당내 경선은 높디높은 장벽이다. 민주..
문재인 대통령이 “고용연장도 본격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제 고용노동부의 새해 업무보고를 받으며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급격한 감소 대비책으로 노인들의 경제활동을 최대한 늘릴 수 있도록 지시한 것이다. 시선은 정부가 지난해 9월 2022년부터 검토하겠다고 공표한 ‘일본식 계속고용제도’로 모아지고 있다. 이 제도는 60세인 법정 정년 이후에도 기업들에 일정 연령까지 고용연장 의무를 부과해 재고용·정년연장·정년폐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년연장을 법제화하거나 처벌은 하지 않되, 정부 지원에 차등을 둬 정년연장을 유도하고 고령층 노동력이 산업현장에 더 투입되는 효과를 꾀하고 있다. 모든 세대가 민감한 정년연장 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국정현안으로 공론화하고 나선 셈이다.올해는..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사건’ 공소장이 최근 공개됐다. 법무부는 앞서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잘못된 관행”이라고 했다. 국민 알권리 침해 지적에도 추미애 법무장관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우리 사법체계는 공판중심주의·공소장일본주의를 채택한다. 재판부가 편견·선입관 없는 상태에서 검사와 피고·변호인이 제시하는 증거와 법리에 따라 유무죄를 다툴 때만 공정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공소장이 재판 전에 공개되면 ‘여론재판’이 시작된다. 판사가 특정 주의·주장에 휘말릴 수 있는 것이다. 공소장이 재판 시작과 함께 공개되면 ‘미리 알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의 알권리와 충돌하는..
임승훈의 단편소설 ‘졸피뎀과 나’에는 가난뱅이 작가 청년이 등장한다. 어깨는 넓지만 종아리가 가는 아버지를 미워한다. 아버지는 밑구멍이 째지는 형편에도 달마를 닮은 돌덩어리 수석을 1000만원에 사오는 한심한 인간. 하루 종일 신세한탄만 주절대다가 멋진 차를 타고 서둘러 퇴근하는 사촌형 빵집사장. 엄마와 청년은 자정까지 빵 만드는 노동을 하고 허리가 고꾸라져 귀가한다. 빵집 형수는 호텔 연회에서 “도련님! 고기에서 흙냄새가 나지 않아요? 비린내가 나요”라면서 시건방을 떤다. 연립주택의 반지하방. 창문도 북향이라 햇볕도 없는 집. 사도들이나 살 법한 카타콤 같은 지하세계를 전전한다. 정신병원에서 지낸 한때의 이력과 감정기복이 심한 여자들과 지난한 연애사, 6평짜리 원룸으로 이사한 뒤 야뇨증으로 실례한 이불..
허용 여부를 놓고 몇 달째 논란이 이어지던 각 시·도교육청의 ‘모의선거 교육’(모의투표)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주 “안된다”며 쐐기를 박았다. 선관위원 9명 전원이 참석하는 전체회의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데, 이로써 학교에서 모의투표를 할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막히게 됐다. 예컨대 이미 지난해 12월 모의투표를 진행할 40개 학교의 선정을 마치고, 이를 지원할 예산과 교육계획까지 준비했던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이 모든 걸 갈아엎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모의투표를 함께 준비해왔거나 이를 지지해온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겠지만 선관위가 이를 받아들여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없다. 교육감들이 선관위 결정에 반발해 강경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낮다. 한 교육감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터라 정치적 오해를 살 게..
“반박 시 틀니 압수.” 랜선 세계를 떠돌다가 우연히 마주친 표현이다. 여기서 만난 것 대부분이 금세 잊히는데, 이것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틀니 압수”는 ‘꼰대짓’하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는 맥락에 쓰인다. 노인들이 들으면 서러울 말로, 꼰대짓하는 사람은 대개 나이 많은(그래서 치아가 손실된) 사람일 것이라는 편견이 내재돼 있다.하지만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꼰대인가?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꽉 막힌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반박 시 틀니를 압수하겠다고 선언하는 인간은? 반박을 ‘금지’하는 태도는 꼰대의 것으로 보기 손색없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절묘한 아이러니이다. 꼰대적 태도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고,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은 자연 현상은 자연의 질서를 따른다. 하지만 가치와 제도처럼 인간 사회에서만 중요한 것들은 호모 사피엔스들의 생각에 따라 변해간다. 정치와 경제의 영역이 특히 그렇다. 사람들은 더 많은 타인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움직여주기를 바라며 분투해왔다. 휴대폰으로 이 칼럼을 읽는 분들에게 보일 광고들이 그런 분투의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다수의 콘텐츠와 서비스가 광고료에 의존할 정도로 마케팅에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투자된다. 당연히 기업들의 고심이 깊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마케팅할 수 있을까? 구매는 현대사회의 핵심적 활동인 만큼 뇌과학자와 경제학자들도 궁금해했다. 구매라는 결정을 내릴 때 뇌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신경마케팅신경마케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