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총력 대응에도 불구하고 감염 확진자가 늘고 있고, 지역사회 감염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 불안감은 커지고, 국가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코로나19는 전염성이 높고, 그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새로운 감염병이다. 대응방법도 달라야 한다. 선제적이고 창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전문가의 협력이 절실하다. 감염병 전문가뿐만 아니라 법 전문가의 자문도 필요하다. 감염병 관련 법에 따르면 확진검사에 불응하는 경우 처벌은 가능하지만 강제검사는 불가능하다. 입법이 불비하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행정기관은 현행법에서도 취할 수 있는 강력한 대응수단을 적극 찾아내야 한다. 자가격리수칙을 위반하거나 검사를 거부하면서 부주의로 다른 사람을 전염시키면 민사상 손해배..
내가 사는 지역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고 종종 만나는 고등학생한테 문자를 했다. 열흘 전 동네에서 만난 그는 친구 집에 간다면서 큰 가방을 걸머메고 있었다. 가방에는 미용 가운과 가발이 들어 있었다. 특성화고 뷰티학과에 다니는 그는 겨우내 미용 시험을 준비하느라 미용학원에 다녔는데, 학원에 못 가는 친구한테 과외 수업을 하러 간다고 했다.“저도 실기 시험 본 거 떨어질지 모르는데, 누굴 가르쳐 준다는 게 우습죠.”그는 수줍게 웃으면서 과외비도 받는다고 했다. 얼마나 받느냐고 묻자 아이는 친구가 저녁을 해준다면서 중학교 때부터 자취하는 친구가 라면은 잘 끓인다고 했다. 그는 이번주에도 어김없이 친구 집에 갈 테니 나는 시청에서 온 안내 문자를 그에게 전달하면서 꼭 마스크를 하고 다니라고, 웬만하면 ..
터키에선 체즈베라는 황동 용기와 달궈진 모래를 이용해 커피를 만든다. 커피는 아프리카 동북부에서 출발해 터키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으로 전해졌고 흔히 ‘비엔나 커피’라 부르는 비너 멜랑주로 탈바꿈했다. 마르세유를 통해 커피를 받아들인 프랑스는 프렌치 프레스라는 변형된 터키식 커피 추출 방식을 발명했다. 핀란드에서는 치즈 위에 커피를 부어 마시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다방커피 맛을 기반으로 개발된 믹스 커피가 사랑받았고, 외국인 관광객은 이 커피를 특산물이라 여기며 사 간다.커피를 파는 카페의 문화도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식 카페에는 와이파이와 고객용 플러그가 없으면 안되는데, 이탈리아의 카페엔 의자조차 없는 경우도 흔하다. 의자가 있어도 사용하려면 별도의 자릿값을 내야 한다.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카페를 ..
방부제, 화장품, 불로장생, 연금술.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이 단어들을 연결하는 것 중 하나가 ‘수은’이다. 현대사회에서 수은은 유해 중금속 중 하나이나, 고대 동양의 진시황은 진사(황화수은이 주성분인 광석)를 태워 불로장생의 단약을 만들고자 했으며, 서양의 연금술사들은 수은을 소금, 황과 함께 금을 만들기 위한 주요 성분으로 여겼다. 남미의 일부 국가나 아프리카 등에선 아직도 영세한 업자들이 소규모로 금을 채굴할 때 수은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은은 광부의 건강을 해치고, 대기로 배출돼 지역을 오염시키며, 바다와 바람을 타고 북극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수은의 악영향은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하다. 영국의 동화작가 겸 수학자인 루이스 캐럴은 에서 노동자들의 수은 중독 문제를 풍자했다. 18세기 ..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질병이 보건을 넘어 인권, 정치, 경제의 영역까지 침투하면서, 개인의 두려움은 집단적인 미움과 절망으로 이어진다. 바이러스의 은밀한 공격이 연일 생중계되고, 거기에 더해지는 온갖 말들이 범람한다. 어디서부터 무엇 때문에 잘못된 것일까.이 상황의 원인은 특정 국가도, 종교도, 정권도 아닌 바이러스다. 우리의 의학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 외에 해결책이 있을 리 없다.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전문적 협의는 지속해야 하겠지만, 그 길의 어디에도 배제와 비난이 필요한 대목은 없다. 은폐를 전략으로 포교하는 종교집단이 확산의 온상이 된 것은 슬픈 현실이다. 그러나 이들도 병세를 밝히고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확진자 증가에 연연하지 ..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패했을 때마다 나온 반성문의 8할은 “오만과 독선”에 대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권 출범 해에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 정도를 빼고는 이변이 아닌 경우가 없었다. 여론조사에도 잡히지 않던 표심이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막상 뚜껑을 여는 순간 판을 뒤집어엎은 결과다. 이변의 연속에서도 검증된 철칙이 있다. ‘선거는 오만한 쪽이 진다.’2016년 20대 총선은 여당인 새누리당이 대세를 잡고 있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유지하고, 새누리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의 2배에 달했다. 과반은 물론 개헌선까지 호언하던 새누리당은 그러나 제1당마저 빼앗기는 참패를 당했다. 오만과 독선의 끝장을 보인 소위 ‘진박’ 공천 파동이 결정타였다. ‘질 수 없는 선거’에..
지난여름의 일이다. 오후 5시 우체국에 갔다. 한참이 지나도 대기 번호가 바뀌지 않았다. 중앙전산시스템이 마비됐다 한다. 이미 한 차례 안내를 했다며 기다리든가 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오란다. 이럴 때 대비한 매뉴얼이 없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고 우정사업본부 홈페이지에도 아무 얘기가 없다. 사고도 막아야 하지만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한 매뉴얼이 더욱 절실해 보였다.코로나19 때문에 나라가 온통 비상사태다. 시장과 공연장에 사람이 없고 자영업자는 울상이 됐다. 질병에 대한 공포는 예외가 없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은 위기상황에서 더욱 힘들어진다. 방역마스크를 사려고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은 그 줄에도 설 수 없다. 병마도 무섭지만 하루 일을 쉬는 게 더 무섭기..
아버지는 15년 전 혈액암으로 돌아가셨다. 늘 다니던 동네 병원에서 감기치료를 했는데, 도통 낫지 않았다. 진단명이 나온 것은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긴 뒤였다. 30년 넘게 한국인 사망원인 1위가 암이지만, 내 아버지가 그 통계 수치에 포함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며 나는 끊임없이 ‘왜?’를 질문했다. 억울했다. 병은 아버지에게서 제일 먼저 이름과 살아온 내력을 지웠다. 환자복을 입은 아버지는 ‘몇 호실 할아버지’였다. 병중에 겪는 모든 일들이 상상해보지 못한 것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아버지가 힘들어한 것은 무균실의 나날이었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면역력이 떨어져 비닐 장막이 쳐진 무균실에서 지내야 하는 일은 병으로 지친 몸에 고립이 더해지는 것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