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글을 쓰는 것의 허망함을 지금보다 더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말도 감염의 확산을 막을 수 없고, 어떤 말도 감염으로 만들어지는 여파를 감당해 낼 수 없다. 그럼에도 무엇인가를 써야 하는 순간, 전해야 하는 말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1월 말부터 전염이 시작된 코로나19는 2월 초순을 지나 정체돼 ‘안도’의 한숨을 쉴 만하니 곧바로 ‘창궐’의 수순을 밟았다. 신흥종교 신천지의 포교 방식이든, 중국인들을 ‘원천봉쇄’하지 못한 효과가 늦게 발생했기 때문이든, 결과는 나쁜 쪽으로 전개됐다. 확진자 수는 600명을 넘어섰고, 외부인 감염이 아닌 지역사회 감염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다.무엇이, 누가 이 사태를 만들어 냈는지 다양한 설이 떠다닌다. 중국인의 입국을 막지 않은 정부냐, 몰래 병을 옮..
지금은 횡단보도 턱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턱이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장애가 없는 성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횡단보도 턱이 큰 장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휠체어 장애인, 유아차를 이용하는 여성의 경험을 통해서다. 누구에게는 별일이 아니지만 누구에게는 엄청난 문제인 일이 참 많다. 누가 보느냐에 따라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문제가 보여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중요도나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누가’, 어떤 경험을 통해서 보는가는 의제를 설정하고 해결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의 핵이다.국가공동체 내 다양한 구성원들의 삶의 문제를 정책 영역으로 들여와 제도적·공동체적 해결을 모색하는 정치의 출발점은 누구의, 어떤 문제를 정책 의제, 공동체의 문제로 삼을 것인..
지난 한 달은 평소 안 보던 뉴스를 부지런히 챙겨 보면서 지냈다. 전 지구적으로 일어난 두 사건, 곧 코로나19로 인한 공포와 영화 의 오스카상 수상이 안겨준 기쁨 사이를 오가면서 말이다. 2002년 사스 이후 심심하면 출현하는 바이러스 탓에 세계는 비상에 걸렸고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던 인간들은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쉽게 잡힐 것 같던 바이러스가 밀집된 종교 집단의 의례와 만나면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이런 재난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는 불안과 공포로 인한 사회 해체에서 올 것이다. 음식점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고 살길이 막막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인간, 호모 사피엔스 종의 충실한 일원인 나는 본능적으로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궁리에 들어간다. 그리..
전염병이 퍼지면 공포는 생명보다 생계를 먼저 공격한다. 1990년대 ‘홍콩조류독감’으로 뒤섞어 부르던 조류인플루엔자(AI)가 한국에 처음 발생한 때가 2003년 12월이었다. 닭을 먹으면 사람도 죽는다 여겨서 당시 치킨점 10%가 폐업을 하고, 70% 정도의 치킨점이 적자를 냈다. AI부터 구제역, 메르스나 사스 사태가 터졌을 때도 병에 걸려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코로나19 사태가 외식 특수가 있는 입학식과 졸업식, 밸런타인데이 시즌과 맞물리면서 요식업 전체가 고통에 빠졌다. 요식업에 기대고 있는 농어업도 크게 타격을 입고 있다. 2월에는 학교급식 공급을 준비하면서 생산자와 유통인들 모두 기지개를 켜야 할 때인데 개학이 늦춰지면서 큰 혼란에 빠져있다.먹고사는 일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지난해 2월 미국의 한 공익연구단체에서 농약 성분인 글리포세이트가 여러 종류의 맥주에서 허용치 이상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농약맥주’라고 불리면서 해당 맥주 목록이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아다녔다. 미국의 한 연구단체가 자국에서 판매되는 맥주에 대해 제기한 위해성 논란의 파장이 한국까지 미친 것이다.식품의약품안전처는 수입맥주에 대한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국내 유통 중인 수입맥주를 즉시 수거·검사했다. 다행히 국내 유통 중인 맥주에서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수입식품의 안전 정보에 대해 정부 차원의 즉각적 조사와 조치가 필요하다.2019년 우리나라 수입식품의 시장규모는 32조원을 넘어섰다. 연평균 5.6%씩 증가하고 있다. 마트만 가면 중국 마라소스, 태국 뚬양꿍 라면, 네덜란드 쿠키 등..
코로나19 환자가 무섭게 늘어나고 있다. 대한감염학회 등 국내 10여개 감염병 전문가들로 구성된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는 지난 22일 “이제는 확진자 발견과 접촉자 격리 등 차단 중심의 봉쇄전략(1차 예방)에서 지역사회 확산을 지연시키고, 이로 인한 건강피해를 최소화하는 완화전략(2차 예방)의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야 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이미 전국에서 확진환자가 발생했고, 앞으로 상당 기간은 그 숫자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 재난 상황이다.지금까지 밝혀진 코로나19의 임상적 특성을 볼 때 중국 외 발생 국가에서는 1% 미만의 치명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과거 우리가 극복해온 사스(SARS)의 10%, 메르스(MERS)의 30%보다는 낮은 수치다. ..
뒷집 마당에검은 구덩이 새로 패였다 줄을 서서 배웅하던 나무들말을 잃고 묵묵히 젖은 산그늘을 끌어 덮었다 담벼락에 나란히 기댄 의자들도햇볕에 졸던 한쪽 귀를 벌써 어둠에 묻었다 굴뚝에서 거먼 길이흘러나올 때다리를 저는 그림자가 잠깐 다녀간 듯 우물가에 체인이 벗겨진 자전거,녹슬어서 여기까지 온 것만도 애쓴 거라고눈두덩이 부은 저녁이길가에 한참 서 있다가 들어갔다. 염창권(1960~) 낮과 밤의 하루를 우리는 산다. 낮의 시간에 밤은 시작되고, 밤의 시간에 낮은 시작된다. 이 시는 낮의 시간이 밤의 시간으로 옮겨가는 풍경을 보여준다. 쓸쓸한 풍경이지만 애상(哀傷)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검은 구덩이가 하나 새로 생겨난 것으로 보아 하루 동안 상처받은 일이 있었고, 또 고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무와 의..
지난 주말을 전후해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00~200명씩 증가하면서 전체 환자가 60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도 6명으로 늘었다. 사망자는 주로 장기입원해온 기저질환자들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이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지역 감염의 확산세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주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경기, 대구·경북 등 일부 시·도에 제한됐던 코로나19 분포가 제주·강원·울산 등으로 확산하면서 17개 시·도 전체가 감염지역에 포함됐다. 전국 어디에도 청정지역은 없다. 더 큰 문제는 확산 추세가 조기에 차단될 것이란 조짐이 없는 상황이다. 검사 중이거나 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는 유증상자만 수천명에 달한다. 앞으로 확진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코로나19 비상 국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