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생태탕, 동태찌개의 맛이란 아련한 추억이다. 북엇국, 황태국은 어떤가. 이 모두가 명태(明太·Alaska Pollack)에서 온다. 생태는 잡은 그대로의 명태이다. 급속 냉동한 것이 동태, 그냥 말리면 북어, 얼다 녹으며 노랗게 부풀도록 말리면 황태다. 나라가 동강나자 동해안의 실향민은 미시령과 대관령 아래에서 황태 문화를 이어갔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동해상의 밀수를 통해 북의 명태가 남으로 오고, 남의 곡물이 북으로 갔다고도 한다. 나라는 갈라졌어도 명태 문화는 이어졌다. 그만큼 명태가 한국인의 일상에서 소중한 식료라는 뜻이겠다. 조선 문인 서유구(1764~1845)도, 일제가 편찬한 (1908)도 명태를 조선에서 유통 규모가 가장 큰 수산자원이라 했다. 이보다 앞서, 최창대(1669∼1..
곧 개강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 강의를 나가면서 낯선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졸업해야 할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 있는 현상이다. 바로 졸업 유예자들이다. 목적의식이 명확한 친구들도 있지만, 졸업을 앞두고 자기모색이 필요한 친구들도 보인다. 이제는 취업 자체가 이행기 노동시장에서 하나의 ‘인생시험’이 된 것 같다. 청년들은 1년 내내 취업을 준비한다. 심지어 대학 1학년 신입생 때부터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 내 마음이 더 우울하다. 취업 준비와 경력 쌓기를 위한 휴학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지난 10년 새 대학 휴학자 비율은 더 증가하는 추세다. 2명 중 1명은 취업 문제로 휴학을 한다. 대졸자 10명 중 4명이 취업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나마 눈높이를 낮춘 ‘하향 ..
2020년 첫날 경향신문 1면은 일러스트(삽화)로 시작했다. 그물 위엔 로봇 서빙을 받는 사람이 여유로이 누워있고, 어느 ‘자리’를 뜻할 빈 의자가 얹혔다. 서류파일을 든 남녀와 휴대폰 보는 공장 노동자의 옷매무새도 말끔하다. 그물 밑에선 사람도, 오토바이도, 시곗바늘도 다 녹아내렸다. 배달 라이더는 휴대폰을 땅에 내려치고, 접시 든 가사도우미 어깨는 축 처졌고, 젊은 남자는 빈손으로 서서 양초처럼 타 녹고 있었다. 그 물 위로 작업화와 철가방이 떠다니고 손이 허우적댔다. 비온 땅의 죽순처럼 사방팔방 번져가는 플랫폼노동자의 시린 군상이고, “살려달라”는 절규이리라. 그물은 그들이 넘볼 수 없는 노동자 지위와 근로기준법, 사회안전망을 상징할 게다. 삽화 위엔 “노동이 녹아내린다”는 제목이 달렸다.녹아내린다..
20일 전체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오랫동안 폐렴을 앓아온 60대로, 숨진 뒤 검사에서 확진자로 추가됐다. 국내 코로나사태는 감염 한 달을 지나면서 비상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 2차 감염-지역감염-사망에 이르는 코로나19 유행의 사이클을 밟아가는 양상이다. 대응영역이 해외유입과 국내 전파, 확진자 치료로 넓어지고 힘들어졌다. 가장 우려할 상황은 지역감염 확산이다. 19~20일 확인된 확진자들 대부분은 대구·경북에 몰려있고, 이들 중 상당수는 31번째 환자에 의해 감염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확진자 가운데 최소 38명은 31번 환자가 예배에 참여한 신천지대구교회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경북 청도 대남병원에서 ..
김대중 정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손톱 밑의 가시’ 같은 존재가 있었다. 정권 초부터 간단없이 DJ를 향한 폭로전을 주도하고 ‘암’ ‘공업용 미싱’ 같은 독설을 퍼부으며 공격의 선봉에 섰던 이들이다. ‘DJ 저격수’라는 별명이 붙었던 정형근·이신범·이사철·이규택·안상수·김문수·김홍신 의원 등이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DJ 저격수’들이 여의도 한 음식점에 모였다. 여권이 ‘표적 공천’을 공식화하자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실제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DJ 저격수들에 대해 타깃 공천을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신범·이사철 의원을 ‘저격’하는 데만 성공했다.남의 사주를 받아 사람을 찔러 죽이는 자객(刺客), 무서운 말이다. 2005년 9월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 고이즈미..
한 세기 전인 20세기 초만 해도 인류의 가장 큰 사망원인은 ‘감염병’이었다. 1900년 의학통계를 보면 사망원인 1·2·3이 ‘폐렴과 독감’ ‘결핵’ ‘설사’ 같은 것이었다. 전체 사망원인의 절반을 차지했다(, 빌 브라이슨). ‘현대의학’을 구원한 페니실린이 등장하기 전(페니실린의 발견은 1928년, 대량생산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이니 인류는 세균과 바이러스들에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튼튼한 몸을 믿거나, 감염되지 않길 기도하는 게 전부였다. 정체도, 대책도 알 수 없는 그 작은 것들은 인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무지의 공포’는 ‘재앙’의 서막이었다.무지의 정반대편에 인간의 ‘용기’가 존재한다. 때로 그것은 ‘희생’이라는 극적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를 통해 인류는 진보했다. 실상 감염병과의 ..
20년 전 새벽 4시 영하 15도의 골목길을 기억한다. 싼 맛에 구입한 새벽 비행기를 타러 공항 가던 길, 폐지 줍는 할머니를 보았다. 그는 75도쯤 굽은 등으로 쓰레기를 매만져 자기 몸체만 한 폐지를 구원해냈다. 누가 감히 게을러서 가난하다고 하는가. 고 노회찬 의원은 새벽 4시 구로에서 강남 가는 6411번 버스를 타는 청소 노동자에 대해 말했었다. 한겨울 새벽길에는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이 세계의 평온을 몸으로 떠받치는 사람들.2018년의 ‘쓰레기 대란’이 폐지로 돌아왔다. 똑같은 전개다. 전 세계 50%의 폐기물을 수입하던 중국이 이를 금지했다. 폐기물을 떠넘길 곳이 없어지자 폐기물 가격이 폭락한다. 그 결과 재활용의 춘추전국시대 혹은 ‘만인에 대한 ..
친하게 지내는 S 작가님이 3월에 한 달 동안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다. 그의 설레는 목소리를 들은 것이 지난가을이니까, 코로나19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때였다. 얼마 전 그에게 여행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묻자 그는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라면서, 여행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도 수는 적지만 확진자들이 있고 공항을 오가는 동안 잠복기에 있는 누군가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도 동양인으로서 받을 차별이 두렵다고 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동양인이 운영하는 초밥집에 낙서테러가 일어났다고 하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욕설과 조롱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고도 한다. 프랑스의 숙소에서 예약 취소를 통보해 올 것 같다고도 하는 그는,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