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주 정부의 구성을 둘러싼, 예상치 못한 투표결과로 독일이 시끄럽다. 옛 동독지역에 속한 튀링겐주의 주지사를 선출하는 투표에서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과 보수당인 ‘기민당’의 지원으로 소수당인 ‘자민당’ 후보가 제1당인 ‘좌익당’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극우정당이 이제 정치의 결정권을 쥘 수 있게 되었다는 충격은 1932년 선거에서 나치가 정권을 합법적으로 장악했던 악몽까지 떠올리게 하였다. 안팎의 강한 압력으로 당선자는 결국 자진해서 사퇴했고, 메르켈 총리의 후임자로서 차기 수상후보로 지목된 크람프카렌바워도 기민당의 당대표 직을 사임하였다. 문제의 핵심은 극우정당이 과거 나치처럼 다시 독일정치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데 있지 않다. 통일 이후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정치..
늘 불편하거나 두려운 장면이 있다. 힘센 집단이 개인을 곤궁에 빠뜨리는 장면이다. 화난 채 혹은 낄낄대며,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 수군대며 왕따를 시킨다. 몸을 혹사시키고 기회에서 배제시킨다. 나는 큰 집단이 개인에게 겁주는 곳이 늘 싫었다. 그런 사회는 개인들이 집단 속에서 존재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 그곳은 공리적 이익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권리를 간섭하고 통제하며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그런 점에서 나는 조지 오웰의 소설 를 소름까지 돋으며 고통스럽게 읽은 기억을 갖고 있다. 과학, 사랑, 행복, 자유, 언어를 왜곡하고 개인마다 무력하게 위축시키는 집단의 광기를 끔찍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언어의 생성과 죽음, 말과 글을 통제하며 개인의 삶과 사회적 의사소통체제를 억압하는 과정에 호기심..
영화 이 한국인을 행복하게 할 줄은 몰랐다. 오스카 시상식을 우리의 행사처럼 즐겼다. 감독과 제작진의 영예를 한국과 연관 짓는 것은 낡은 감정 같지만, 실제로도 좁게는 한국영화계, 넓게는 한국의 성과인 측면이 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만, 본질적으로 종합예술이다. 의 성취는 감독의 각별한 재능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으나, 감독의 예술적 역할이 더 중요한 유럽 영화제 수상과 오스카 수상에는 차이가 있다. 오스카 수상이 더 뛰어난 업적인 것은 아니나, 더 어려운 장벽을 넘어선 건 분명하다. 봉준호,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감독 등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영화를 만들어 왔는데, 그것은 대체로 개인의 역량이 발휘된 결과다. 그러나 오스카 수상에 이르면, 한국영화계와 한국이라는 배경을 더 살펴야 한다. ..
청년기본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을 때, 국회에서 청년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하자며 청년미래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청년 당사자들과 토론회를 연 적이 있다. 기회가 좋아 나도 참관했다. 결국 청년기본법은 우여곡절 끝에 올해 초 통과되었고 8월 시행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날 나는 청년기본법이 통과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절망감을 조금 느꼈다. 청년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는 한 의원을 그 자리에서 만났기 때문이다.청년은 어떻게 이 사회를 체감하는지,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진지하게 입법권자에게 전달하러 온 청년 당사자들을 앞에 두고, 그 의원은 듣기도 부끄러운 본인의 성공 신화를 늘어놨다. 시골에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본인은 열심히, 좌절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국회 의원회관 한가운데 이렇게 앉아 있다고. 혹..
겨울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다시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학교는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졸업식을 제대로 못한 학교들도 많고 대학들은 입학식과 개강을 연기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낮과 밤이 반복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처럼 우리의 삶도 새로운 시작과 마침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일종의 질서를 부여했음을 깨닫는다.어느 때부터인가 자연의 질서도 예측불허이고 우리의 삶의 조건들도 예측하기 어려워져간다. 남부지방은 겨울 내내 눈이 한 번도 내리지 않더니 3월을 앞두고 눈이 내린다. 동백과 매화는 이미 피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봄에 황사는 얼마나 심할지 걱정이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문제투성이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제기하는 사..
‘이름을 빨강색으로 쓰면 죽는다’는 미신이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가 자신의 이름을 붉은색으로 쓰면 기겁을 한다.하지만 이는 정말 웃기는 얘기다. 가까운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은 물론이고 우리와 문화가 비슷한 북한에도 그런 미신은 없다. 북한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의 지도자 이름을 산하 곳곳에 붉은 글씨로 써 놓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붉은 글씨로 이름을 쓰는 것은 무척 싫어하면서도 도장으로 찍는 이름은 다들 붉은색이다.사실 우리는 예부터 붉은색을 길한 색으로 여겨왔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 것은 ‘붉은색이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믿음 때문이고, 조선시대 왕들이 붉은색 용포를 입은 것도 붉은색의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함이었다. 전통혼례에서 신부의 양볼에 연지를 찍고 이마에 곤지를 찍는 ..
경향신문은 지난달 29일자에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의 칼럼을 게재했다. 임 교수는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으로 “4·15 총선에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이 칼럼이 사전선거운동이라며 임 교수와 경향신문을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비난여론이 이어지자 고발을 취하했지만 임 교수의 과거 이력을 문제 삼아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앞서 언론중재위 산하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해당 칼럼을 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선거법은 선거운동기간 외에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임 교수의 칼럼은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북극의 빙하가 해마다 줄어든다고 한다. 터전을 잃고 몸이 홀쭉해진 북극곰 사진을 보았다. 먹이를 찾아 홀로 방황하는 흰곰. 점점 줄어드는 빙하의 면적이 곰의 발목을 점점 올가미처럼 죄는 것 같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그 처지를 한반도에도 적용시켜 본다. 겨울에도 적설량, 눈 오는 일수가 적어진다. 무엇보다도 눈 쌓인 면적이 졸아든다. 강원도로 가서야 겨우 제대로 된 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러다간 나의 겨울 정신도 북극곰의 육체처럼 핼쑥해지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을까.퍽이나 다행스럽게 최근 눈 소식이 들렸다. 심설산행을 도모하러 백두대간의 마산봉-대간령 구간을 걸었다. 진부령 입구 흘리에서 스패치,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모처럼 쓸모를 만난 장비들이 덩달아 흥분하는 것 같았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행을 천왕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