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4000년 전 인도네시아의 토바(Toba) 화산이 폭발한 이후로 개체수가 2000까지 줄어든 종이 있었다. 그런데 그 종은 그 이후로 6만2000년 동안 전 세계로 확산되어 1만2000년 전쯤에는 개체수가 400만까지 늘었고, 2000년 전쯤에는 1억9000만에 이르렀다. 그리고 1804년에는 10억이 되더니 거의 10년마다 10억 개체씩 늘어 현재는 무려 77억이다. 7만4000년 전에는 멸절을 걱정하던 종이 지금은 말 그대로 지구를 뒤덮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종에 대한 이야기일까? 호모 사피엔스! 물론 개체수 면에서 77억이 최고라고는 할 수 없다. 가령 소, 돼지, 닭, 양처럼 덩치도 좀 있으면서 엄청난 개체수를 자랑하는 가축들이 있다. 그들의 개체수를 다 더하면 인구의 3배 정도(225억마..
지구적으로 확산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려를 넘어 가시화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는 여행이나 입국 금지, 다양한 형태의 인종주의가 표출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한 도시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얼마나 전 세계적 파괴력을 갖는 것인지 보여준다. 이에 대처하는 각국의 태도에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선진국이라 알려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의 인종차별적 행위와 언어들은 이러한 질병이 가진 사회문화적 성격을 웅변해준다. 한 예로 독일의 ‘슈피겔’은 이달 초 발간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다루면서 표지에 ‘Made in China(중국산)’라 표기해 물의를 빚었다. 주간지는 중국에서 발병 초기 문제를 제기했던 의사들이 당국의 심문을 받았다는 내용 등 중..
자율주행차를 둘러싼 윤리적 논란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자율주행차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전방에 10명이 나타났다. 그대로 가면 행인 10명이 죽고 핸들을 틀면 차에 탄 1명만 죽는다. 무엇이 바람직한 선택일까? 이런 경우 대부분은 차에 탄 사람만 죽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문제가 자율주행차 때문에 새로 나온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장마철에 홍수가 나서 아버지의 고향집이 물에 잠긴 적이 있다. 비가 그치고 나서 가보니 집은 거의 2층까지 잠겼다. 댐의 물을 방류했다면 괜찮았겠지만 그랬다면 서울이 위험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사람이 많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시골이 희생하는 것은 불..
1월부터 세미나를 시작했다. 17세기 존 로크부터 21세기 존 테일러 개토까지 경험 중심, 아동 중심의 교육을 주창해온 사상가들의 이론을 공부하고 실천을 탐구하는 자리다. 스무 명이 넘는 신청자 중 대부분은 대안학교 교사들이다. 이들이 한두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오가며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동기는 주로 ‘답답해서’라고 한다. 현장 교사들의 답답함은 대안교육의 정체 현상과 맞물린다.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수백개의 대안학교가 전국에 생겨났다. 시민들의 힘으로 대한민국 교육이 변하고 있구나, 가슴 벅차던 시절이었다. ‘공교육’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와 학생들은 숨통이 트였다. 자유로운 학교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교사들은 흐뭇해했다. 과업에 들볶이던..
흔히 ‘깍뚜기’로 잘못 쓰기 쉬운 ‘깍두기’는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딸인 숙선옹주가 궁중에서 열린 종친 회식 때 내놓아 호평을 받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홍선표의 ). 당시 종친 어르신들이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묻자 숙선옹주가 “평소 남는 무를 ‘깍둑깍둑’ 썰어서 버무렸더니 맛이 있어서 이번에 내놓게 됐습니다”라고 해 ‘깍두기’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이때 ‘깍두기’를 한자로 음차해 적은 것이 ‘각독기(刻毒氣)’다. “독기를 없앤다”는 의미로, 무가 가진 해독성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다.정조의 할아버지 영조도 무를 무척 좋아했다. 성격이 깐깐한 탓인지 평소 소화불량에 시달린 영조는 무를 먹으며 배앓이를 이겨낸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이 40대에 그쳤지만, 82세까지 산 영조의 장수 비결..
대한민국 헌법엔 특권이라는 단어가 1번 등장한다. ‘제11조 3항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사실 특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국회의원에 한해 두 가지 특권을 인정하는 조항이 있다. 직무상 발언에 대한 면책 특권과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되지 아니할 불체포 특권. 적어도 법적으로는 다른 특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권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국회의원의 특권 말고도 검찰과 언론 등이 가진 권력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것 외에도 곳곳에 스며 있는, 별것 아닌 듯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특권도 있다. 사는 곳에 따라, 버는 돈의 액수에 따라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표현이 범람한다. 비정규직의 사원증 목줄·식권의 색이 ..
칠언율시, 오언절구, 사자성어를 생각해 본다. 팽나무 씨앗에 팽나무의 모든 미래가 온축되듯 한자에는 한 글자 너머의 뜻이 깊이 쌓인다. 세 글자의 단어도 있다. 어느 철학책에서 만난 ‘단독자’는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새겨지는 말이다. 지금 나에게 와닿는 말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광합성’이다. 산에 다니면서 식물에 대한 궁리 끝에 길어 올린 것이다. 이 세상을 먹여 살리는 밑바탕이 바로 저 세 글자에서 비롯되지 않겠는가.오래 묵혀둔 숙제를 풀려고 한국고전번역원에 왔다. 뒤늦게 고전에 입문하려고 해보지만 굳어진 머리와 고드름처럼 자란 나이가 발목을 잡는다. 맹자의 한 대목에서는 천하에서 공히 존중하는 셋 중의 하나로 나이를 들기도 하지만 이게 결코 자랑은 아니다. 어차피 홀로 걷는 길, 또 한번의 결기가 ..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법과 원칙, 증거 등에 따른 사법부의 단죄는 당연한 ‘절차적 정의’다. 살인은 특히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중죄다. 그런데 아내를 살해한 이모씨(68)에게 서울고법이 10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면서 “집행유예 기간 동안 보호관찰 아래 치매전문병원에서 계속 치료받을 것”을 명령했다. 이날 선고는 치매를 앓고 있는 이씨가 치료 중인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이뤄졌다. 법정 밖 선고도 이례적이지만, 살인 범죄자에게 집행유예와 함께 전문치료를 선고한 것은 사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국내 첫 ‘치매 환자에 대한 치료적 사법절차에 따른 판결’이다.치료적 사법은 처벌보다는 문제해결에 주목적이 있다. 전통적인 사법체계의 틀 안에서 보완적으로 도입된 새로운 사법 결정 방식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