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서 살인이 난무하는 가든 파티의 근본적 원인은 선을 넘어오는 ‘기택(송강호)의 냄새’였다. 지하철 타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 ‘봉테일’(봉준호+디테일) 감독답게 세트장에는 냄새까지 구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빈부(貧富)의 상징은 반지하와 저택이란 시각적 대비 없이는 구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영화에서는 수많이 계단이 비친다. 반지하 셋집에 쇄도하는 빗물의 계단, 대문에서 잔디밭을 지나 현관과 거실 및 2층 침실로 이어지는 화려한 계단까지. 그 계단들을 하나하나 오르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지하에 숨은 기택에게 아들 기우(최우식)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저는 근본적인 계획을 세웠어요. 돈을 벌겠습니다. 그리고 이 집을 사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계단을 올라오..
기술의 발전 때문에 인간은 편안하다. 또한 불안하다. 해결해야 할 숙제가 끝이 없다. 영상편집을 연습했더니 다음은 배경음악이 문제다. 주머니를 털어 실력 있는 뮤지션에게 작곡을 의뢰하고 싶지만 내 벌이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그래서 개러지밴드를 배우기로 했다. 간단한 음악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앱이다.뮤지션 박성도님을 만나 두 시간 개인교습(?)을 받았다. 입이 떡 벌어졌다. 오선지에 콩나물 하나씩 그리던 시대가 아니다. 미리 녹음된 짧은 소리들을 레고블록처럼 조립하면 음악이 뚝딱 나온다. “창작이란 개념 자체가 바뀌는구나!”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블록을 쌓듯 조립하는 창작이라니, 이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는 만화가다. 파스티슈니 포스트모던이니 하는 말은 제쳐두고, 창작자의 먹..
겨울의 끝이 보인다. 세상이 어수선해도 계절은 바뀔 것이다. 봄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서도 움트고 있어 어느 날 아침 창밖을 내다보면 앙상한 가지만 남았던 나무에 나무눈이 파릇할 것이다. 이렇게 일 년 내내 몸은 움직이지 않고 방구석에 앉아 보일러 온도만 올리고 내리는 나 같은 사람은 계절을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듯 얘기한다. 봄은 잎이 돋고, 여름은 우거지고, 가을은 낙엽이 구르고, 겨울은 잿빛이고…. 식상한 말로 계절을 맞이한다. 그런데 아르바이트 4년 차인 열아홉 살 청년의 계절은 달랐다. 그는 계절을 아르바이트 업종으로 구분한다. “사시사철 좋은 건 편의점이에요. 여름에는 배 봉지 씌우기, 겨울에는 택배 상하차 일이 하기 좋은데 힘들긴 진짜 힘들죠.”배 봉지 씌우기는 100장에 5000원..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은 옳은가. 만일 그렇다면 아픈 사람은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이가 될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이 통념은 건강하지 않은 이들의 사회적 성원권을 박탈하고 우리의 일상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다.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재개념화가 필요한 시대다.정신질환 환자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진짜 아픈 사람은 저 사람(대개 ‘가해자’)인데, 병원은 왜 내가 다니지?” 건강 상태는 ‘전문가’의 진단, 개인의 감각에 따라 다르다. 육체적 건강에서 정신적 부분을 분리하는 사고방식부터 논쟁적이다. 어떤 상태가 건강한 것일까. 전두환씨의 건강이 ‘불편한’ 사람은 나뿐일까.건강한 상태는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사망의 연속선에 있는 몸의 일생을 계량하는 문제다. 정의하기 어려운 인간의 조건..
오래된 습관과 같이 오랜 관행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한 관행이 설령 잘못된 것이어도 그렇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야당 국회의원이 요청한 공소장 전문을 제출하길 거부하고 공판 개시 이후에 공개하겠다고 밝히자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것도 그러한 예이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형사재판에서의 정당한 방어권, 명예, 인격권을 고려하면 공판절차의 개시 이전에 공소장의 전문을 무조건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임에 동의한다. 우리나라는 공소 제기 이전에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고, 심지어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 공표죄라고 해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를 처벌하고 있다. 작년에 겪었던 조국 전 법무장관과 관련한 각종 보도로 인해 우리 국민은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이와 ..
신종 코로나에 대한 보수 야당의 행보는 미국 영화 를 연상케 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3일 “나라가 온통 정신이 없는데 대통령이 공수처에 한눈팔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환자 한두 명 나왔다고 장관과 총리가 나설 순 없다”는 그의 국회 답변과 정면 배치된다. 과거에는 장관·총리조차 나설 일이 아니라더니 이제 와서는 대통령까지 안 나선다고 타박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는 지난 2일 “신종 코로나 정보를 투명 공개하라”(한국당 대책TF 회의)고 요구했다.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역시 “감기 좀 유행한다고 정부가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2015년 국회 답변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황 대표가..
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있다. 1954년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하여 TV로 옮겨 1982년까지 이어졌고, 2005년부터 다시 방송되고 있다.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관객들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어린이는 아무리 뽐내도 사랑스럽다.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잘하는 것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라는 제목이 여전히 어색하지 않다.정조가 어느 날 역정이 묻어나는 비답을 내렸다. 심낙수가 홍국영, 구윤옥, 송환억 등을 비난하면서 이들이 있어서 치세라고 할 수 없지만 정조가 있으므로 난세라고도 할 수 없다면서 결단을 요구한 상소문에 대해서였다. 정조는 심낙수의 태도를 문제 삼는다. 그렇게 숨겨진 흠집까지 들추어내어 어지럽게 다투는 행위 때문에 치세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온몸에 퍼진 열병..
“살아 있는 우리는 죽은 자들일지니, 쓰디쓴 죽음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중세의 수도사 노트케르 발불루스의 말처럼 죽음은 살아 있는 자의 몫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는 것처럼 생명에도 끝이 있다. 도처에서 일어나는 죽음의 소식들은 죽음이 삶의 먼 곳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이유다.죽음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죽겠다는 ‘웰다잉’ 운동이다. 영화 가 화제를 모으고, 영국 BBC방송은 삶의 마무리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선보였다. 2018년 국내에서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이 도입됐다. 시행 2년 만에 환자 8만여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