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새벽녘 헤어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그곳에 지난해 11월29일 부산경마공원에서 경마기수로 일하다 자결한 문중원님 시신이 안치된 냉동차가 서 있다. 천막에서는 누군가 또 언 몸을 겨울 애벌레들처럼 침낭 속에 쑤셔 박고 있겠지. 해를 넘기지 말자고, 설 전에는 보내주고 싶다고 몸부림치던 유가족들이 자고 있는지도 모를 일. 잠시 고개 숙이고 돌아선다.돌아서니 길 건너, 겨울 찬바람만 휑한 광화문광장이 왜 또 이 늦은 시간에 잠 못 들고 서성이냐고 묻는다. 눈 감으면 2016년과 2017년으로 이어지던 겨울, 이곳에 넘쳐나던 촛불의 바다가 환히 보인다. 온갖 빛깔 산호초로 뒤덮인 해저처럼 황홀하고 아름다웠지. 그러나 딱 거기까지만. 다시 눈 감으면 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신종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중국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중국인 혐오 논란, 보수세력의 뿌리 깊은 반중 정서 등 우리 사회가 중국을 바라보는 인식의 균열이 두드러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위상이 새삼 확인되면서 각국은 신종 코로나를 차단하기 위한 대응 수위 마련에 고심하고 있기도 하다.물론 한국 시민의 건강보다 중국 정부의 심기를 살피는 게 우선순위일 수는 없다. 중국의 불투명성, 폐쇄주의가 사태를 악화시켰음도 부인키 어렵다. 그렇다 해도 ‘노 차이나’ 정서의 확산은 도덕적으로나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인을 바이러스 서식처쯤으로 여기고 있다면 인종적 혐오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지금은 어떤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을지 모를 만큼 전 세계가 촘촘히 얽혀 ..
그가 일하는 곳은 중국 산둥반도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해안 도시다. 그가 나고 자란 한국 해안 도시에서 비행기로 5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중국 사무실로 간 지 1년이 넘었지만, 너무 바빠서 도시 구경할 틈도 없었다는 그는 설 명절에 집에 돌아와 차례를 지내자마자 짐을 꾸렸다.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하고, 각국은 고립된 자국민 귀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가 인터넷으로 시시각각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는 중국으로 가야 했다. 그를 걱정하는 이들은 손 세정제와 마스크를 잘 챙기라는 말밖에 할 게 없었다. 그의 부모는 중국 지도를 펼쳐놓고, 딸이 있는 도시가 우한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가늠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미 태평양을 건너고 대륙을 가로질러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가고 있는 판인 걸 모르지..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고, 최근 이 말을 실감하게 만드는 분이 바로 추미애 법무장관이다. 추 장관이 취임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다. 대통령이 조국 교수를 법무장관에 임명한 것은 비리 혐의자를 참지 못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밑바닥이 다 드러난 조 전 장관이 황급히 사퇴했지만, 수사의 칼끝은 이미 정부의 핵심을 겨누고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총선 참패는 물론이고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문재인 대통령은 추 장관을 구원투수로 내보냈다. 이 선택이 의외였던 것은 그 이전까지 추 장관의 정치 이력에서 남다르게 뛰어난 점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희대의 삽질에 동참했던, 현 정부의 실세라 할 친문들이 곱게 봐주기 힘..
내년부터는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물질이 어디서 발생되고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위성에서 관측할 수 있게 된다. 국내에서 개발한 천리안위성 2B호가 고도 약 3만6000㎞의 정지궤도에서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북부, 몽골 남부까지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대기환경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리안위성 2B호에는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지구에서 반사된 태양빛을 원자 크기 단위로 분해, 관측하여 대기 중 극미량으로 존재하는 대기오염물질의 농도를 측정해 낼 수 있는 환경 센서인 초분광영상기가 탑재된다. 이 환경 센서에서 관측되는 초분광 자료는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황, 이산화질소, 포름알데히드 등과 오존, 에어로졸 등 비교적 짧게 존재하는 기후변화 영향 물질의 농도 등 20..
물갈이, 본디 ‘수족관이나 수영장 등의 물을 간다’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는 ‘기관이나 조직체의 구성원을 큰 규모로 바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가 들어 있다. 매번 총선 때마다 ‘물갈이’가 최고의 승리 공식이 되어 대규모 현역 의원 교체가 반복되었기에 사전에까지 등재된 것이다. 16대부터 20대 국회까지 초선의원 비율은 절반에 육박한다. 현역 의원이 4년마다 절반 가까이 바뀌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초선의원 비율이 최고로 높다. 기성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넘어설 수 있는 유력한 선거 무기로 ‘물갈이’가 동원되어온 결과다. 물갈이 경쟁 속에서 총선 때마다 절반 가까이가 바뀌었지만, 4년이 지나면 어김없이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지탄이 돌아온다. 인적 쇄신이 목전의 선거..
우리는 전기가 당연히 항상 공급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산다. 적어도 2011년의 9·15 정전 이후로는 그랬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전기가 자동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이 아니라, 설사 전기가 끊어져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는 비상전원시스템 덕분이다. 데이터센터, 병원, 방송국 등 중요시설에는 전력이 끊어졌을 때를 대비한 비상전원장치(uninterruptible power supply)가 설치돼 있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도 컴퓨터로 중요한 작업을 할 때 전력이 끊기면 안되기에 소형의 비상전원장치를 쓰는 경우도 많다.비상전원장치에는 디젤 발전기를 이용하는 타입, 배터리를 이용하는 타입, 플라이휠을 이용하는 타입 등 다양한 타입들이 있다. 언젠가 잠실야구장에 설치돼 있는 플라이휠 UPS를 볼 기회가 ..
총선이 다가오면서 각 정당들의 이합집산과 인재 영입 노력이 한창이다. 이런 노력은 이번만의 일이 아니라 한국 정당들이 선거를 목전에 두고 늘 해왔던 일상화된 일들이다. 왜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평상시에는 동물국회, 식물국회라 일컬을 정도로 일반 국민을 위한 일을 하지 않은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유난히 무언가 새로운 것을 내세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한국 선거법 개정 패턴을 보면 거의 선거 직전에 이루어진 사례가 많다. 국민들에게 한 일이 없으니 거의 비현실적인 선거법 개정으로 자신들의 죄의식을 회피하려는 의식에 불과했다. 정당 간 이합집산도 염치 없는 행동이다. 해방 이후 정당 이름만 100여개에 달하고 이합집산도 300여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