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이후 중국발 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시진핑 집권체제가 성립할 줄은 어느 누구도 예측 못했을 것 같다. 중국 핵심 지도부는 리창, 차이치, 왕후닝과 같이 시진핑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기준으로 채워졌다. 전문가들은 권력을 강화한 시진핑이 향후 보다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고 중국만의 방식으로 발전을 추진하겠다는 언명이나, 군사력의 지속적인 강화, 대만에 대해 비평화적 방식의 통일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주장 등은 이러한 예측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여전히 중용된 시진핑의 책사 왕후닝의 이상이 원(元)나라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영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20차 당 대회의 보고서와 ..
바야흐로 산에는 단풍, 산밑에는 결혼이다. 직원이 좀 쭈뼛거리는 눈치더니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이런 경사스러운 문건은 두 손으로 받아야 하는 게 옳은데 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쑥스러운 듯 돌아서는 10월의 신부께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어떤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하던 후배가 흐뭇한 소식을 보내왔다. 마흔이 다 되도록 짝을 찾지 못해 여러 회원들이 를 결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술꾼들이란 술자리의 말을 그냥 술잔 옆에 흘리고 나오기 십상이다. 후배는 ‘총장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마련한 청첩장을 띄운 것이다. 이라고 적혀 있었다. 비록 예식장에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예식 준비에 항상 함께했을 양친을 향한 신랑의 마음 씀씀이가 퍽 대견하고 인상적이었다. 30여년..
월 9유로, 한화 1만2500원이면 기차와 버스 자유 이용. 지난 6~8월 3개월 동안 독일 정부가 시행한 근거리 대중교통 할인 정책이다. 물가와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시민들의 부담을 덜고 탄소배출도 줄이려는 의도였다. 정책의 결과는 놀랍다. 무려 5200만여명이 9유로 티켓을 샀다. 이 나라 성인 모두 한 차례씩 구매한 셈이다. 티켓을 이용한 사람 중 20%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다른 27%는 버스나 전철을 한 달에 한두 번 타는 게 전부였다. 이용객 절반이 자가용을 놔두고 대중교통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독일 통계청은 이 정책 첫 달인 6월 철도 운송 이동량이 코로나19 이전 같은 시기보다 평균 42%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시기 중거리 도로 교통량은 6% 줄었다. 덕분..
‘레고랜드 사태’가 일파만파다. 굴지의 대기업마저 자금난에 허덕이고, 초우량 등급인 한국가스공사 발행채권마저 유찰될 정도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2050억원을 못 갚겠다며 지난달 28일 레고랜드 사업주체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기업회생을 신청하며 벌어진 일이다. 지방정부가 지급보증했던 우량 채권이 부도나자 시장에 공포가 번졌고, 신용붕괴를 막으려 정부와 한국은행이 최소 50조원을 쏟아붓는 중이다. 시장이 진정되지 않으면 비용이 더 들어갈 수도 있다. 김 지사는 지난 24일 입장문을 내놨으나 궤변 일색이다.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적 없다. 금융사가 임의로 부도처리한 것”이라고 했으나, 금융사 측은 대출연장을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010년 성남시장 때 지불유..
누가 호수에 가보자 해서 산책하다 웰시코기 한 마리가 웃고 따라옴. 영국 웨일스산 귀염둥이 강아지 있잖은가. 오요요 해서 불러보니 다가와 안김. 고놈 참 사람 좋아하네. 내게 개냄새가 나서 그런가. 근데 주인이 안 보여. 데리고 그 자리서 쫌 놀았는데, 헐레벌떡 한 아가씨가 달려오니 개가 돌변하여 나를 향해 으르렁거림. 연기도 잘하데. 주인과 재회해서 천만다행. 주인 말고도 사람이라면 다 좋아하덩만. 우리집 개들도 빨간 헬맷을 쓴 집배원이나 중화요리 배달부 아저씨 빼고는 다 좋아하는 거 같아. 동물만 그런 게 아니고 사람도 사회성이 좋은 이들이 있다. 누구라도 잘 어울려. 타고난 성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반려견은 어려서부터 사회성 교육을 잘해야 한다. 개통령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수십년 애견인에 나름 ..
검찰은 억울하겠지만 일반인들은 검찰이 승자 편이라고 여긴다. 만약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겼다면 검찰의 입장과 태도는 지금과 사뭇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된 이 대표도 위기지만, 검찰도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같은 평행세계가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3월9일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0.73%포인트 차로 누르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됐다. 이미 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으로 검찰청 포토라인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폭로 같은 것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대장동 세력이 검찰의 회유에도 사실을 감추고 인내하며 여전히 자신들만의 의리를 ..
“지옥이란 경이(驚異)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 경이로움이 내 안에서 죽었을 때, 권력(욕망)이 태어났다.” 아일랜드 시인 브렌던 케널리가 한 이 말을 요즘 자주 생각한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소위 3고(高) 시대를 맞아 도무지 재미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나날의 삶에서 ‘재미’를 추구하고 사는 게 나 같은 보통 시민들이 바라는 소박한 염원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바라는 ‘사는 재미’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친구와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고, 연인과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가고, 가까운 벗들과 ‘불금’이면 우정의 술잔을 나누는 것 같은 사소한 행위들이다. 얼마 전 내가 사는 동네에서 시인 박준과 가수 김필의 공연 (양천문화회관)를 ‘직관’한 것..
나는 경부선 상행 기차를 타면 웃는다. 20년 전 처음 그 기차를 탔을 때 지은 웃음은 드디어 고향을 탈출한다는 승리의 의미였지만, 이제는 그냥 열차에 앉아 있는 승객들의 모습이 웃겨서 웃는다. 부산에서 출발해 대구를 지날 때까진 분위기가 느슨하다. ‘우리가 남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무튼 동대구역까진 ‘서울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같은 출세지향적 설렘이 있다. 그러다 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할 즈음 사람들은 시계를 본다. 출발한 지 1시간40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 대전이라니? 내가 생각보다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음을 깨달으며 피로가 급격히 몰려온다. 충청도의 문이 열리고 말투가 전혀 다른 사람들이 빈자리를 모두 채운다. 객실이 만원이 되면 계절에 상관없이 열기가 차서 숨 쉬기가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