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영광대로 잡음은 잡음대로 많던 ‘미슐랭의 별’이 이번에도 스캔들을 터뜨렸다. 올해의 스캔들은 미슐랭 가이드북이 자랑해오던 평가 원칙 때문이었다. 미슐랭 측은 암행 평가단이 드러나지 않게 식당을 방문해 별점을 매겨왔다 했지만, 한국에서 처음부터 미슐랭 가이드북에 관여하는 컨설턴트들이 붙어 수수료를 받고 별 3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줬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2016년 처음 발행된 ‘2017 미슐랭 가이드 서울 편’에 당시 한국관광공사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인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에서 20억원을 미슐랭 가이드북에 지원해 논란이 있었다. 처음부터 암행의 과정이 아니라 한식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20억원도 미슐랭 가이드북 측이 요구한 ‘보안유지’를 핑계로 ..
서울 봉천동 탈북모자가 지난 7월31일 통장 잔액 0원인 채로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이 먹먹해졌던 까닭은 그 죽음이 가난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아사’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장애아동을 돌보느라 일할 수 없었던 엄마 한모씨가 0원만 남은 통장을 들고 먹을 것이 없는 집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시간을 견뎌왔을지 그 막막함과 외로움을 상상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한씨는 이혼한 사실과 가난을 입증하지 못해 복지의 날카로운 그물망 코에 걸린 채 좌절하고 죽어갔다. 그러나 어찌 한씨 모자뿐이랴. 성북구의 네 모녀도 그렇게 죽었고 문재인케어의 그늘에서 오늘도 가난한 자들의 죽음은 넘쳐난다.하지만 탈북민에 대해 유독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가난에 더해 국가가 그간 탈북민들에게..
몇 개월 전 언론보도에서, 학교 방과후 몇 시간 동안 학부모들이 직접 보호 지도가 결여된 아동을 대상으로 인성·습관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와 같은 시민의 움직임이 범법자들을 관리하는 법무부에서도 제도화된 정책으로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우리 정부는 1989년 법체계에서 최초로 소년범을 대상으로 하는 보호관찰제도를 실시했고, 1990년대에는 성인 범죄자들에게도 이를 확대해 실시하고 있다.우리 사회의 경제, 정치, 환경 등 제반분야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주체들은 민주사회 생활에 필수적인 기본 덕성이 결여된 것과 직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인구의 약 0.4%의 시민들이 범죄자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들 중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자들은 약 15만명이다. 이들의 원활한 ..
눈을 감으면 기어이 재생되고 말았다. 떨어져 죽고, 끼여 죽고, 깔려 죽는 노동자들의 마지막 장면 말이다. 재해조사의견서를 들여다본 날이면 어김없었다. 증상은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기획팀원 모두에게 나타났다. 팀원들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18년 1월~2019년 9월 사고성 산업재해에 대해 작성한 재해의견서 1305건을 전수조사했다. 재해자 정보와 사고 개요, 원인 등을 엑셀 시트에 입력하고 분류하는, 한 달이 꼬박 걸린 작업이었다. 의견서는 건조했다. 1692명의 죽음의 원인이 단어 몇 개로 정리됐다. ‘개인 보호구 미착용’ ‘작업계획서 미작성’ ‘방호망 미설치’…. 하지만 읽는 마음까지 메마를 순 없었다. 안전모만 썼어도, 지게차 시동만 껐어도, 관리자만 있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
“발 있으면 따라오등가.” 부장이 혼잣말하듯 툭 던지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석달 전 ㄱ씨(35)가 서울에서 대전지사로 근무지를 옮긴 첫날, “뭔 말인가 했다”는 충청도 화법이다. “밥 먹으러 가자”는 말이다. 그 점심부터 충청도에서 듣고 접한 대화는 ㄱ씨 스마트폰에 쌓여가고 있다. “참외 파는 거예요?” “그럼 뭐하게유”로 시작하는 좌판 대화는 고전 격이다. “5000원?” “냅둬유 개나주게.” 돈을 치르고 “빨리 싸주세요” 하면 또 따라붙는 말이 있다.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시유.” 수틀리면 나오는 “냅둬유 개나주게”는 2010년 정초 MB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내놨을 때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이 써서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졌다.축약과 해학. 충청도 사투리를 상징하는 두 단어다. 충청도 말엔 복모..
가을이 깊어간다. 나무들은 이제 하늘을 향해 뻗었던 광합성 전진기지를 서서히 철수하고 있다. 물과 영양분이 들락거리던 지난 성하(盛夏)의 물관과 체관으로 한 켜의 나이테를 더한 나무는 작년보다 몸통을 더 키웠다. 공기 속의 삶을 선택한 나무들은 위로 높이 솟구치기 위해 밑동을 부풀린다. 나무가 생산하는 유기화합물의 90% 이상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에서 비롯된다. 10%가 채 안되는 나머지는 뿌리를 통해 흡수하는 지각 속의 물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땅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나무는 가히 대기권에 근거를 둔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무는 어떻게 꼿꼿이 서게 되었을까? 식물은 리그닌(lignin)이라는 생체 고분자 화합물을 발명한 덕분에 수직 상승을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 목재 혹은 나..
2012년 2월부터 일반주택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포함한 주택용 소방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률이 개정되었다. 소화기는 세대별·층별 각 1대 이상,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구획된 실마다 1개씩 설치토록 규정하고 있다.주택용 소방시설(단독경보형 감지기와 소화기)은 초기 화재 대응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지난 9월 서울 봉천동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주방 후드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관악소방서에서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홍보차 무상으로 설치해준 단독경보형 감지기가 화재로 인한 연기를 감지해 경보를 울렸고, 거주자가 소화기를 이용하여 소방대 도착 전 화재를 진화했다. 자칫 대형화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 화재는 단독경보형 감지기의 울림으로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조그마한 울림..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 항공권을 양도한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나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와 연결된 여러 재미있는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다른 김민섭씨들에게서 종종 연락이 온다는 것이다. “저도 밤나무입니다” “너도 밤나무로구나” 하는 전래동화가 떠오를 만큼 “저도 김민섭입니다” 하는 여러 김민섭들과 만났다. 93년생 김민섭씨가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72년생 김민섭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저의 이름을 이렇게 널리 좋은 이미지로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김민섭님께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하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자신이 만든 파스타를 들고 웃으면서 찍은 사진도 함께였다. 93년생 김민섭씨는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