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라면 나들이객들이 오갔을 일요일 한낮 덕수궁 돌담길에 인적이 드물었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도로에도 차가 별로 없어 퇴근 시간이 15분 가까이 단축됐다. 코로나19의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도시의 풍경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사람들의 일상은 정상 궤도에서 벗어났다.스포츠도 코로나19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정규시즌 막바지에 접어든 프로배구는 순위싸움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교통 접근성이 좋은 서울 장충체육관의 경우에는 평일에도 좌석이 매진된 것은 물론이고 입석 관중이 수백명에 달할 정도로 팬들의 발길이 잦았다. 그러나 프로배구는 25일부터 무기한 무관중 경기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보다 앞서 관중을 들이지 않기로 결정한 여자프로농구의 선례를 따른 것이다. 시즌 개막..
철원이라고 하면 곧장 쌀밥을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여름에는 한탄강, 겨울에는 두루미의 고장이다. 나의 경우 그 사이에 절 이름 하나가 슬쩍 끼어들기도 한다. 얼음 트레킹,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 관찰 등 몇 번의 철원 여행에서 백마고지, 노동당사는 둘러보았지만 그 아름답다는 절을 이정표에서 확인하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고대산 지나서 철원의 경계에 들어서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이었다. 절이라는 곳은 저물 무렵에 가야 더욱 특별한 맛이 나는 법이다. 철원에서 저녁을 맞이했으니 방향은 딱 한 곳으로 정해졌다. 길 위에서의 바쁜 마음을 추슬러 이번에는 곧장 그 절로 들이닥쳤다.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아담한 절이 바로 나타났다. 도피안사(到彼岸寺)는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이며, 통일신라 경문왕 ..
우려하던 일이 결국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위험에 맞서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인데, 이를 둘러싼 논의와 정책을 정치화시켜 버리는 일 말이다. 사태 초기부터 그들은 2008년 광우병 사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런저런 시그널들이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위험을 정치화시키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선거운동이다. 총선이 두 달밖에 안 남지 않았는가. 그러나 코로나19를 광우병으로 만드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수입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 계층과 한우를 먹는 계층을 뚜렷하게 갈라놓았던 광우병과 달리 호흡기 질환인 코로나19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민주적인’ 위험이어서 전선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국민의 안전을 시장에 맡기려 했던 보수정부와는 달리 공공의 영역에 적극 개입하는 문재인..
“저기요” 하고 부르면 열에 여덟은 성난 얼굴로 돌아본다는 곳, 한국 사회가 그렇다고 한다. 조금만 건드려도 어디서든 빵하고 터져 나올 만큼, 그만큼 억압된 것이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바이러스가 우리를 불렀다. 누가 감염된 자인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확산된 혐오와 불안을 보면서 계속 떠오르던 말이 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일본에서 분노의 표적이 되었던 그 조선인은, 중국인이 되었고, 다시 대구 사람들이 되고, 이제 ‘신천지’가 되고 있다. 그들을 격리하고 제거하면 우리 모두 안전해질 수 있을까?위험한 존재를 ‘안전한 공간, 건강한 사회’로부터 제거하는 방식은 어디서나 비슷하다.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방식은 소독과 방역, 의심과 격리, 배..
코로나19 위기경보가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높아진 가운데 하루 200명 이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 폭증세가 심상치 않다. 일부 지역에 몰린 환자 급증 상황이 전국적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 확산세를 꺾기 위해선 앞으로 몇 주간이 관건이다. 그 어느 때보다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역이 절실해졌다. 신천지 예배로 예상치 못한 감염의 둑이 무너지기 전까지, 국내의 안정적인 대처가 가능했던 것은 합심해서 위기를 극복하자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연대 덕분이었다. 정부는 더욱 엄중해진 상황에서, 한 단계 강화된 대국민 수칙을 발표할 예정이다. 24일 코로나19 감염자는 800명을 넘어섰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환자 75% 이상이 신천지 대구교회와 청도대남병원 관련 확진자이고, 지역별로도 대구·경북 쪽에 몰려 있다. 그러..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속도만큼이나 대구·경북 지역 주민의 불편과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평소 북적대던 대구 칠성시장은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18일부터 손님이 뚝 끊겼다. 24일에는 오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반면 약국과 이마트에는 마스크와 소독제, 생필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유무 증상으로 자가격리 중인 시민들이 불안해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구·경북 주민들은 1주일째 코로나19와 전쟁 중이다.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 못지않게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사회 일각의 혐오와 기피 정서다. 서울의 일부 대형병원은 대구·경북 지역 환자들의 수술을 연기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은 25일부터 일정기간 대구~제주 노선의 운항을 중단키..
코로나19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한 이들이 잇따라 재판에 넘겨졌다. 춘천지검 속초지청이 지난 11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업무방해 협의로 ㄱ씨를 불구속 기소한 데 이어 대구지검도 지난 21일 ㄴ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두 사람이 “ㄷ병원 가지 마라, 신종바이러스 의심자 2명 입원 중” “ㄹ병원 신종 코로나 의심환자 검사 중, 응급실 폐쇄 예정”이라는 내용을 각각 카카오톡 단체방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뜨린 혐의 때문이다. 수사 결과 ㄱ·ㄴ씨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해당 병원이 입은 유·무형의 피해는 컸고 해당 지역 시민은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검경이 수사 중인 코로나19 관련 허위사실 및 개인정보 유포사건은 100건에 이른다..
사회적으로 글을 쓰는 것의 허망함을 지금보다 더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말도 감염의 확산을 막을 수 없고, 어떤 말도 감염으로 만들어지는 여파를 감당해 낼 수 없다. 그럼에도 무엇인가를 써야 하는 순간, 전해야 하는 말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1월 말부터 전염이 시작된 코로나19는 2월 초순을 지나 정체돼 ‘안도’의 한숨을 쉴 만하니 곧바로 ‘창궐’의 수순을 밟았다. 신흥종교 신천지의 포교 방식이든, 중국인들을 ‘원천봉쇄’하지 못한 효과가 늦게 발생했기 때문이든, 결과는 나쁜 쪽으로 전개됐다. 확진자 수는 600명을 넘어섰고, 외부인 감염이 아닌 지역사회 감염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다.무엇이, 누가 이 사태를 만들어 냈는지 다양한 설이 떠다닌다. 중국인의 입국을 막지 않은 정부냐, 몰래 병을 옮..